AI가 글을 쓰고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시대가 되면서 창작의 형태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번역과 통역, 글쓰기와 그림 제작까지 기술이 개입하는 영역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이 직접 겪은 사랑과 상실, 마음속에 오래 남은 이름과 기억은 쉽게 대신할 수 없다. 동시통역사 출신 성진선 작가가 AI 동화작가 JIN으로 선보이는 첫 그림책 『너를 부르는 이름』은 바로 이 가장 인간적인 감정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너를 부르는 이름』은 반려묘 구름이와 마중이를 떠나보낸 뒤 완성된 감성 그림책이다. 성진선 작가는 열일곱 해 동안 함께한 존재들이 떠난 뒤 남겨진 빈자리와 그리움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 오랫동안 곁에 머물렀던 발소리, 눈빛, 체온, 말없는 교감은 사라진 뒤에도 마음속에 선명하게 남았고, 그 기억은 한 권의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다.
이 작품에서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단순히 누군가를 호명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잊지 않겠다는 마음이며, 보이지 않는 존재를 기억 속에 다시 초대하는 일이다.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사랑까지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가 『너를 부르는 이름』 전체에 조용히 흐른다. 이 책은 사랑했던 시간을 오래 붙들고 싶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성진선 작가는 오랫동안 언어의 현장에서 활동해온 전문가다.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TEFL 과정을 이수했으며,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한영통역 전문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센터에서 PM 겸 전속 통역사로 활동하며 국회, 외교부, 삼성전자 등 주요 기관과 기업의 통번역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통역은 단순히 문장을 다른 언어로 바꾸는 일이 아니다.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감정, 현장의 분위기, 문화적 배경까지 빠르게 읽어내야 하는 고도의 언어 작업이다. 성진선 작가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언어의 정확성뿐 아니라 말이 가진 온도와 여운을 다루는 감각을 쌓아왔다. 이 섬세한 감각은 『너를 부르는 이름』의 문장에도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생성형 AI의 확산은 언어 전문가와 창작자들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AI가 번역, 통역, 글쓰기, 이미지 생성까지 빠르게 수행하는 시대에 인간의 언어 감각은 어디에서 더 빛날 수 있을까. 성진선 작가는 이 질문 앞에서 AI를 단순한 위협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의 경험과 감정을 더 넓고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는 창작 도구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 『너를 부르는 이름』은 AI 기술과 인간의 실제 기억이 만난 그림책으로 완성됐다. AI는 시각적 표현의 가능성을 넓혔고, 성진선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언어 감각은 이야기의 중심을 만들었다. 기술은 형식을 확장했지만, 작품을 움직이는 힘은 사랑했던 존재를 향한 진심과 오래 간직하고 싶은 기억에서 나온다.
특히 이 책은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사랑해본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전할 수 있다. 반려동물과의 이별은 단순한 작별이 아니라 일상의 리듬이 달라지는 경험이다. 늘 곁에 있던 존재가 사라진 뒤 집 안의 공기와 하루의 감각은 달라진다. 『너를 부르는 이름』은 그 빈자리를 억지로 지우려 하지 않는다. 대신 사랑했던 시간을 따뜻하게 기억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또한 『너를 부르는 이름』은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어린 독자에게는 소중한 존재를 기억하는 마음을 부드럽게 전하고, 어른 독자에게는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던 그리움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슬픔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오래 남는 여운을 전하는 점이 이 책의 큰 매력이다.
영어판 『A Name to Call You Home』은 아마존 킨들을 통해 먼저 공개되며 해외 독자들과 만났다. 한국어판 『너를 부르는 이름』은 6월 26일 종이책으로 정식 출간된다. 발행은 북메이트가 맡았으며, 판형은 216×216mm, 정가는 16,000원이다.
성진선 작가의 이번 출간은 동시통역사에서 AI 동화작가로 이어지는 새로운 전환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타인의 말을 다른 언어로 옮기던 그는 이제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그림책이라는 언어로 전하고 있다. 이는 AI 시대에도 인간의 경험과 감성이 여전히 창작의 핵심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너를 부르는 이름』은 AI 시대에 태어났지만 가장 인간적인 온기를 품은 그림책이다. 반려동물과의 이별을 경험한 사람, 사랑했던 존재를 오래 기억하고 싶은 사람,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지는 위로의 책을 찾는 독자들에게 오래 남을 작품으로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