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단어가 끊어낸 외교 채널 — 이스라엘·EU '인종격리' 충돌

"한 단어에 끊긴 외교"… 이스라엘이 EU 외교 수장과 전면 단절한 이유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발언 후폭풍 — 사르 vs 칼라스, 무슨 일이 있었나

가자 전쟁이 만든 균열, 끝내 터지다 — 이스라엘·유럽 정면충돌 전말

▲ AI 이미지,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제공

이스라엘 외무장관 기드온 사르가 6월 18일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정책 고위 대표와의 모든 접촉을 끊겠다고 선언했다. 칼라스가 5월 멕시코 방문 중 이스라엘의 대(對)팔레스타인 정책을 남아공의 인종 격리 체제에 빗댄 것으로 보도된 데 따른 것이다. 칼라스는 같은 날 대화 의지를 밝혔으나 해당 발언을 부인하지 않았고, 사르는 해명 전까지 결정을 유지한다고 못 박았다.

 

외교에서 단어 하나가 다리를 놓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한다. 2026년 6월 18일, 이스라엘과 유럽연합 사이에서 그 단어는 '아파르트헤이트(인종 격리)'였다. 이스라엘 외무장관 기드온 사르가 EU 외교 수장 카야 칼라스와의 모든 공식 접촉을 끊겠다고 공개 선언하면서, 가자 전쟁 이후 줄곧 팽팽하던 양 측 관계가 끝내 표면 위로 터져 나왔다. 무엇이 두 사람을, 그리고 이스라엘과 27개국 공동체를 이 지점까지 밀어붙였는가. 

 

왜, 그리고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이번 충돌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균열이 아니다. 가자 전쟁이 길어지는 동안 EU 내부에서는 이스라엘의 군사작전과 서안지구 정착촌 확대를 둘러싼 비판이 누적됐다. 지난 5월 EU는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 인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한 개인 3명과 단체 4곳에 제재를 부과했고, 사르는 이를 부당하고 정치적인 조치라며 강하게 거부한 바 있다. 칼라스는 2024년 EU 외교 수장에 오르며 강경파로 통하던 전임자 시절의 긴장을 풀 인물로 예루살렘에서 기대를 모았으나, 시간이 갈수록 이스라엘은 그의 행보를 '편향'으로 받아들였다. 그 누적된 불신 위에 '인종격리'라는 표현이 떨어진 것이다.

 

무엇이, 누구 사이에서 벌어졌나

 

발단은 칼라스의 5월 20~22일 멕시코 방문이다. 유럽 매체 유락티브는 6월 12일, 익명의 EU 관계자들을 인용해 칼라스가 멕시코시티 비공개 회동에서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 정책을 남아공 인종격리 체제에 빗댔다고 보도했다. 사르는 6월 18일 자신의 X 계정에 칼라스가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향해 집요하고 노골적으로 불공정하게 행동해 왔다"고 적었다. 이어 "유일한 유대 국가이자 중동의 유일한 민주국가를 겨냥한 중상모략을 철회하기 전까지 칼라스와의 모든 접촉을 끊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다"고 밝혔다. EU 측 대변인은 익명 출처의 주장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며 명확한 부인을 내놓지 않았다.

 

어디서, 언제 응수가 오갔나

 

같은 날 칼라스도 X에 답했다. 전(前) 에스토니아 총리 출신인 그는 "EU와 이스라엘을 잇는 것이 많다", "대화와 교류를 소중히 여기며 존중과 건설의 정신으로 이어가길 바란다"고 적었다. 다만 문제의 '인종 격리' 발언에 대해서는 인정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사르는 곧장 다시 응수했다. 그는 히브리어 게시물에서 "이 해명에서조차 당신은 보도된 발언을 부인하거나 규탄하기를 피하고 있으며, 그것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했다면 책임지고, 하지 않았다면 부인하라. 이 구름이 걷힐 때까지 내 결정은 그대로다"라고 못 박았다. 한편, 칼라스는 6월 15일 룩셈부르크 EU 외무장관 회의 직후, 불법 이스라엘 정착촌과의 교역을 제한하는 방안을 EU 집행위에 요청했다고 밝힌 터였다. 이스라엘을 향한 유럽의 압박은 벨라루스로도 번졌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가자 사태를 두고 강도 높게 비판하자, 이스라엘은 주(駐)텔아비브 벨라루스 대사를 외무부로 불러들였다.

 

끊어진 채널 너머의 질문

 

외교 채널은 도구이지 목적이 아니다. 그러나 이 도구가 끊기는 순간, 손해를 보는 쪽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을 기회를 잃은 양 측 모두다. 사르의 단절 선언은 강경한 항의의 언어이지만, 칼라스의 침묵 또한 또 다른 언어다. 한쪽은 '철회'를, 다른 쪽은 '대화'를 외치는 사이, 정작 그 단어들이 가리키는 가자와 서안지구의 현실은 변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한 사람의 가슴에 새겨진 상처와 한 민족의 기억이 '아파르트헤이트' 다섯 글자를 둘러싸고 충돌할 때, 우리는 묻게 된다. 말이 다리가 되지 못하고 벽이 될 때, 그 벽 너머의 사람을 향한 시선은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단절은 쉽고 화해는 더디다. 그러나 끊어진 자리를 응시하는 일이야말로, 다음 대화의 첫 문장이 될지도 모른다.

작성 2026.06.19 01:21 수정 2026.06.19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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