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오랫동안 인간만이 지닌 가장 정교한 능력으로 여겨져 왔다. 말 속에 담긴 뉘앙스와 맥락, 감정과 문화적 배경까지 실시간으로 옮기는 일. 특히 동시통역은 고도의 집중력과 순간적인 판단력, 그리고 섬세한 언어 감각이 결합된 전문 영역이었다.
그러나 생성형 AI의 등장은 그 믿음을 빠르게 흔들고 있다. 기계번역과 실시간 통역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고도화되고 있으며, 언어를 직업으로 삼아온 이들에게는 오랜 시간 쌓아온 전문성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한다.
JIN, 성진선 작가 역시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는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TEFL 과정을 이수했다. 이후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한영통역 전문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같은 대학 통번역센터에서 PM 겸 전속 통역사로 활동하며 국회, 외교부, 삼성전자 등 주요 기관과 기업의 통번역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그에게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말이 다른 언어권 사람에게 가닿기까지, 그 사이에 놓인 맥락과 감정, 문화적 차이를 읽어내는 일이었다. 통역사는 말의 표면이 아니라 말이 놓인 상황 전체를 옮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는 현장에서 몸으로 배웠다.
이후 그는 영어 강사이자 입시 컨설턴트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서초동에서 프리미엄 학습관리 스튜디오 '엉덩이힘'을 운영하며 학생들의 학습 습관과 입시 전략을 관리했고, 언어를 가르치는 일을 넘어 한 사람의 성장 과정과 방향성을 함께 설계하는 경험을 쌓았다.
AI 시대의 도래는 그에게 위기이자 질문이었다. 오랜 시간 훈련해온 언어 능력이 기술에 의해 빠르게 대체될 수 있다는 감각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는 그 위기 앞에서 하나의 질문을 붙들었다.
"앞으로 인간의 언어 감각은 어디에 쓰일 수 있을까?"
그가 찾은 답은 창작이었다. 성 작가는 AI를 자신의 일을 빼앗는 경쟁자로만 보지 않았다. 오히려 AI를 통해 인간의 상상력과 서사 감각을 확장할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렇게 그는 동시통역사라는 정체성에서 출발해 AI 동화작가이자 창작자로 새로운 전환을 시작했다.
그 전환의 출발점에는 상실과 그리움이 있었다. 지난겨울, 성 작가는 열일곱 해를 함께한 고양이 구름이와 마중이를 떠나보냈다. 오래 함께한 존재들이 떠난 뒤 남은 빈자리는 쉽게 메워지지 않았다. 함께 보낸 계절, 익숙한 발소리, 눈빛과 몸짓으로 나누던 감정들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기억이 되어 마음속에 남았다.
그는 그 그리움을 이야기로 붙들고자 했다. 그렇게 펴낸 첫 그림책이 『너를 부르는 이름』이다. 이 책은 단순한 반려동물 추모의 기록이 아니다. 사랑했던 존재를 잊지 않기 위해, 사라진 존재를 다시 부르기 위해 쓰인 이야기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기억 속에 그 존재를 다시 세우는 일이며, 함께한 시간을 사라지지 않게 붙드는 일이기도 하다.
『너를 부르는 이름』은 오는 6월 26일 종이책으로 정식 출간된다. 영어판 『A Name to Call You Home』은 앞서 아마존 킨들을 통해 글로벌 독자에게 먼저 선보였다. (발행 북메이트 · 216×216mm · 정가 16,000원)
그에게 첫 번째 언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말을 옮기는 일이었다. 이제 그가 발견한 두 번째 언어는 인간과 AI 사이에서 이야기를 짓는 일이다. 통역 부스 안에서 타인의 말을 옮기던 그는, 이제 창작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AI가 수많은 직업의 경계를 흔드는 시대, 성진선 작가의 여정은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기술이 인간의 일을 대신할 때, 인간은 무엇을 잃는가.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인간은 무엇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가.
성진선 작가는 그 질문에 자신의 방식으로 답하고 있다. AI에게 대체되는 사람이 아니라, AI와 함께 새로운 언어를 찾아가는 창작자로. 그리고 그 두 번째 언어는 지금, 열일곱 해를 함께한 이름들을 다시 부르는 일에서 시작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