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동화 - 4편 사랑한다는 말

철학 동화 - 4편 사랑한다는 말

 

 

점심시간이었다.

소연이는 운동장 옆 화단 벤치에 혼자 앉아 있었다.

 

아이들은 축구를 하고 있었다.

소연이는 그쪽으로 가지 않았다.

 

어제 민지에게 한 말이 자꾸 떠올랐다.

별것 아닌 한마디였다.

그런데 민지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지난번에, 민지 글씨 못 쓴다고 했거든."

 

하린이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사과하면 되잖아."

 

"했어. 그런데도, 화가 안 풀렸어."

 

하린이는 더 묻지 않았다.

곧 운동장으로 뛰어갔다.

 

소연이는 혼자 남았다.

 

그때였다.

화단에 물을 주던 꽃 아저씨가 말했다.

 

"친구랑 싸웠구나."

 

소연이는 조금 놀랐다.

"네…."

 

"그 친구, 좋아하니?"

 

"많이요."

 

꽃 아저씨는 튤립 한 송이를 가리켰다.

 

"저 꽃은 어떻게 살아있을 것 같니?"

 

소연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꽃 아저씨는 다시 물을 주며 다른 쪽으로 걸어갔다.

 

소연이는 꽃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매일 물을 주었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아도.

꽃이 알아주지 않아도.

꽃 아저씨는 매일 왔다.

 

꽃잎에 맺힌 물방울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소연이는 한참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수업이 끝났다.

아이들이 교실로 돌아왔다.

 

민지는 창가 자리에서 글씨를 쓰고 있었다.

같은 글자를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어제도.

오늘도.

 

소연이는 자리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민지의 글씨는 조금 삐뚤었다.

반듯하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 쓰고 있었다.

 

소연이는 어제 했던 말을 떠올렸다.

글씨 못 쓴다고.

 

그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사실이라고 해서

다 말해야 하는 건 아니었다.

 

문득, 성경 시간에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예수가 친구에게 물었던 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 친구는 예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던 사람이었다.

 

예수는 화내지 않았다.

따지지도 않았다.

 

그저 물었다.

 

사랑하느냐고.

 

소연이는 그 질문을 그때는 몰랐다.

지금은 조금 알 것 같았다.

 

사랑은 말이 아니었다.

말은 증명이 아니었다.

 

그래서

보여줘야 했다.

 

행동으로.

 

민지가 또 한 줄을 썼다.

 

소연이는 그 글씨를 바라보았다.

 

사실,

예쁜 글씨였다.

 

다음 날이었다.

 

소연이는 교실 문 앞에서 멈췄다.

 

민지는 오늘도 창가 자리에서 글씨를 쓰고 있었다.

 

소연이는 천천히 걸어갔다.

 

가까이 갈수록 가슴이 조금 빨리 뛰었다.

 

그래도,

혹시 또 싫어하면 어떡하지.

 

잠깐 멈췄다.

 

그리고 다시 한 걸음 내디뎠다.

 

민지가 고개를 들었다.

 

소연이는 말했다.

 

"나, 아직 네 친구 하고 싶어."

 

민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교실이 잠깐 조용해졌다.

 

"왜?"

 

소연이는 머뭇거렸다.

 

그리고 말했다.

 

"왜냐하면,

내가 너 좋아하니까."

 

민지는 잠깐 놀란 얼굴이었다.

그리고 다시 공책을 내려다보았다.

 

한 줄을 더 썼다.

 

소연이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잠시 후, 민지가 말했다.

 

"나도."

 

점심시간이 되었다.

 

두 아이는 다시 운동장으로 나갔다.

 

아직 조금 어색했다.

말수도 줄어 있었다.

 

그래도 함께 걸었다.

나란히.

 

소연이는 멀리 화단을 바라보았다.

 

꽃 아저씨가 오늘도 물을 주고 있었다.

 

꽃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사랑한다는 말은 쉽다.

 

하지만

꽃 아저씨처럼

말없이 매일 오는 일은

 

조금 더 어렵다.

 

소연이는

그걸 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날 저녁.

 

소연이는 일기장을 폈다.

 

무언가 쓰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민지 이름을 썼다.

 

민지.

민지.

민지.

 

이름을 세 번 쓰고 나니

마음이 조금 따뜻해졌다.

 

그것으로 충분한 것 같았다.

 

삶을 바꾸는 동화 신문 기자 kjh0788@naver.com
작성 2026.03.27 08:47 수정 2026.03.27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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