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칼럼: 쿠르드민족-2] 잊힌 바람의 노래: 산(山) 외에는 친구가 없는 민족, 쿠르드

쿠르드 잔혹사: 이용당한 민족의 10가지 핵심 이정표

산이 유일한 친구였던 4,500만의 통곡, 쿠르드를 아십니까

미-이란 전쟁의 최대 희생양? 배신의 역사에 갇힌 쿠르드 생존기

▲ AI 이미지,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제공

쿠르드 잔혹사: 이용당한 민족의 10가지 핵심 이정표

 

중동의 지도를 펼쳐보면 기이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거대한 산맥을 따라 수천 년을 살아온 4,500만 명의 거대 민족이 점선 너머로 흩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땅을 '쿠르디스탄'이라 부르지만, 세계 지도는 그 이름을 허락하지 않는다. 오늘날 미-이스라엘-이란의 전운이 감도는 화약고 속에서, 쿠르드는 다시 한번 역사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서 있다. 이 비극적인 서사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마주해야 할 10가지 결정적 장면들을 복기해 본다.

 

1. 오스만 제국의 유산과 분열의 씨앗

 

오스만 제국 시절, 쿠르드 부족들은 자치권을 누리며 제국의 변방을 지켰다. 그러나 제국이 무너지며 등장한 근대 민족주의는 재앙의 시작이었다. 1차 세계대전 직후 맺어진 세브르 조약(1920)은 쿠르드 국가 건설을 약속했으나, 불과 3년 만에 체결된 로잔 조약(1923)에서 이 약속은 서구 열강의 이권 계산 아래 증발했다. 이때부터 쿠르드는 튀르키예, 이라크, 시리아, 이란의 4개국으로 찢어졌다.

 

2. 할랍자 학살, 인류의 양심에 새겨진 흉터

 

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사담 후세인은 이란에 협력했다는 구실로 쿠르드 마을 할랍자에 화학무기를 살포했다. 단 몇 분 만에 5,000명의 생명이 스러졌다. 이는 현대사에서 자국 민족을 향한 가장 잔인한 공격 중 하나로 기록되었으며, 국제 사회가 쿠르드의 생존권에 눈을 뜨게 된 뼈아픈 계기가 되었다.

 

3. '산(山) 외에는 친구가 없다'라는 비극적 경구

 

쿠르드인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이 말은 단순한 속담이 아니다. 100년 넘게 이어진 배신의 역사 그 자체다. 필요할 때는 민주주의의 투사나 테러 척결의 파트너로 추켜세우다가도, 전략적 가치가 다하면 강대국들은 언제나 그들을 외면했다. 험준한 산악 지형은 그들의 유일한 요새이자, 고립된 운명을 상징하는 감옥이기도 했다.

 

4. IS(이슬람국가) 격퇴의 일등 공신, 페쉬메르가

 

전 세계가 IS의 공포에 떨 때, 지상에서 그들과 맞서 싸운 실질적인 주역은 쿠르드 전사 조직인 '페쉬메르가'와 YPG였다. 특히 코바니 전투에서 보여준 그들의 사투는 서구 사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IS가 약화되자마자 그들은 다시 주변국들의 정치적 타깃이 되는 소모품 신세로 전락했다.

 

5. 여성 전사단(YPJ)과 성평등의 가치

 

중동의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쿠르드 사회는 독특한 행보를 보인다. 총을 든 여성 전사들은 단순히 전투원이 아니라, 봉건적 굴레를 벗어던진 자유의 상징이다. '여성, 생명, 자유(Jin, Jiyan, Azadi)'라는 슬로건은 쿠르드 여성 운동에서 시작되어 현재 이란 내부의 저항 운동으로까지 번져나갔다.

 

6.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KRG)의 불완전한 독립

 

이라크 북부의 KRG는 쿠르드 민족이 이룬 가장 구체적인 정치적 성취다. 자체 군대와 국기, 의회를 가졌으며 석유 자원을 바탕으로 경제 성장을 일구기도 했다. 하지만 2017년 강행한 독립 투표는 국제 사회의 냉대와 이라크 정부의 무력 대응에 부딪혀 큰 좌절을 맛보았다.

 

7. 튀르키예와 멈추지 않는 평행선

 

튀르키예 내 약 1,500만 명의 쿠르드인은 존재 자체가 정치적 갈등의 핵이다. 튀르키예 정부는 쿠르드 노동자당(PKK)을 테러 집단으로 규정하고 강력히 탄압해 왔으며, 이는 튀르키예의 EU 가입이나 외교 정책에 있어 가장 큰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언어와 문화를 지키려는 쿠르드의 열망과 국가 통합을 강조하는 튀르키예의 신념은 여전히 충돌 중이다.

 

8. 시리아 내전과 로자바의 실험

 

시리아 북동부 '로자바' 지역에서는 국가 없는 자치라는 독특한 사회적 실험이 진행 중이다. 직접 민주주의와 생태주의를 표방하는 이 모델은 전 세계 진보 지식인들의 관심을 끌었으나, 시리아 아사드 정권과 튀르키예의 공격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가고 있다.

 

9. 미국 외교 정책의 '체스판 말'

 

미국에 있어 쿠르드는 계륵과 같다. 이란을 견제하고 이슬람 극단주의를 막는 데는 최고의 동맹이지만, NATO 동맹국인 튀르키예와의 관계를 고려하면 적극적으로 도울 수 없는 존재다. 2019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시리아 철군 결정은 쿠르드인들에게 또 한 번의 '거대한 배신'으로 기억된다.

 

10. 지정학적 요충지와 자원의 저주

 

쿠르드 거주 지역은 중동의 젖줄인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의 상류이자 막대한 석유가 매장된 곳이다. 자원은 축복이어야 했으나, 주변국들이 이 지역을 결코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저주'가 되었다. 경제적 이권이 얽혀 있기에 쿠르드의 독립은 단순한 민족 문제를 넘어선 에너지 패권 전쟁의 양상을 띤다.

 

산줄기에 맺힌 눈물과 기도

 

중동의 척박한 땅에서 30년 넘게 이슬람의 숨결을 마주하며 살아온 내게, 쿠르드라는 이름은 단순한 민족 명칭 이상이다. 그것은 차가운 국제 정치의 논리 속에서 매일 같이 난도질당하는 '인간 존엄'의 다른 이름이다. 나는 그들의 마을에서 투박한 빵을 나누고, 그들의 눈망울 속에 비친 끝없는 망향(望鄕)의 슬픔을 보았다.

 

어찌 보면 우리네 삶도 쿠르드와 닮았다. 거대한 세상의 흐름 속에서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필요가 없어지면 버려지는 쓸쓸한 존재들. 그러나 쿠르드인들은 말한다. "바람은 산을 깎을 순 있어도, 산의 자부심을 꺾을 수는 없다"라고. 그들은 나라 없는 서러움 속에서도 자신들의 언어로 시를 쓰고, 아이들에게 '자유'라는 이름을 가르친다.

 

강대국의 화력과 외교적 수사가 오가는 이 전쟁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숫자로 계산되는 전략적 가치가 아니라, 한 인간이 온전한 인간으로 대우받기를 갈망하는 그 처절한 진심을 보아야 한다. 산을 유일한 친구로 둔 채 100년을 견뎌온 이들에게, 이제는 우리가 '사람'이라는 따스한 친구가 되어줄 수는 없는 것일까. 긴 밤을 지나 새벽을 기다리는 그들의 고통스러운 인내가 오늘 나의 기도가 된다.

작성 2026.03.12 01:46 수정 2026.03.12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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