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우리에게 산맥 외엔 친구가 없다" 중동의 미아, 쿠르드족이 다시 총을 잡은 이유

- 소총 든 19세 소녀의 고백, 이란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산맥의 여전사들.

- 드론 vs 페슈메르가: 낡은 소총으로 최첨단 '하늘의 눈'에 맞선 쿠르드족의 운명.

- 테헤란의 겨울은 언제 끝나는가? 이란 반군 기지에서 만난 2026년의 분노.

▲ AI 이미지 (제공: 중동디스커버리신문)

BBC는 이란 정권의 억압에 맞서 수십 년간 투쟁해 온 쿠르드 민주당(KDPI) 소속 전사들의 삶과 염원을 다루었다. 이라크 북동부 산악 지대에 거점을 둔 이들은 최근 이란 내 시위 확산을 계기로 정권 붕괴와 쿠르드족의 자치권 회복에 대한 강한 희망을 품고 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을 포함한 신규 모집병들은 성평등과 민족적 권리를 찾기 위해 고난을 무릅쓰고 고국을 떠나 무장 투쟁에 합류하고 있다. 이란 당국의 드론 감시와 군사적 위협이 지속되는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전사들은 자유를 향한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며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 

 

이란의 창살 없는 감옥에서 탈출한 영혼들: 쿠르드 산맥에 피어난 ‘죽음에 맞서는 자들’의 서사시

 

눈 덮인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싸인 이라크 북동부의 거친 고원. 매서운 칼바람 사이로 낡은 AK-47 소총의 금속음이 정적을 깨운다. 이란 국경을 마주한 이 험준한 산악 지대에는 지난 70여 년간 테헤란의 거대한 권력에 맞서온 이란 정권의 가장 오래된 숙적, 쿠르드족이 살고 있다. 그들에게 산은 단순한 지형지물이 아니라, 세상 모두가 등을 돌렸을 때 유일하게 자신들을 품어준 유일한 친구이자 요새였다. 하지만 2026년 오늘, 그 산맥 위로 이란의 정밀 드론이 그림자를 드리우며 고립된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왜 누군가는 안락한 도시의 삶을 뒤로하고 이 시린 골짜기로 기어들어 와 총을 잡아야만 했을까. 죽음을 무릅쓰고 산의 주인이 된 ‘페슈메르가(Peshmerga)’들의 눈동자 속에는 민족의 한을 넘어, 미래를 박탈당한 한 세대의 절규와 절박한 희망이 서려 있다.

 

서툰 소총 재조립에 담긴 세대교체의 서막

 

흑백 체크무늬의 전통 스카프 ‘케피예’를 두른 젊은 남자가 바위 위에 늘어놓은 소총 부품을 보며 진땀을 흘린다. 소총을 재조립하려는 그의 손길은 아직 투박하고 미숙하다. 지휘관 카림 파르카푸르(Karim Farkhapur)는 나지막한 웃음과 함께 "이들은 아직 신병입니다"라고 말하며 젊은이를 다독인다. 이 찰나의 장면은 쿠르드족의 투쟁이 이제 노련한 베테랑의 손에서 서툰 신병들의 손으로, 즉 새로운 세대에게로 옮겨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45년 설립된 이란 쿠르드 민주당(KDPI)은 이란 내 인구의 10%를 차지하는 소수민족의 권익을 위해 싸워왔다. 팔레비 왕조의 탄압을 지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들어선 신권 통치 체제에 이르기까지, 정권의 이름은 바뀌었어도 쿠르드족을 향한 압박은 멈추지 않았다. 이에 맞서는 이들의 저항은 단순한 반정부 활동을 넘어, 민족 자결권이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권리를 향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전선의 여전사들, 여성의 권리가 곧 민족의 자유다

 

쿠르드 반군의 훈련소에는 특별한 전사들이 있다. 어깨에 소련제 드라구노프 저격 소총을 멘 19세 소녀 파리나(Farina)가 그 주인공이다. 그녀가 안온한 집을 떠나 산맥의 여전사가 된 이유는 민족적 억압뿐만 아니라, 이란 정권 아래서 철저히 짓밟힌 ‘능력주의’에 대한 절망 때문이었다.

 

"이란에서는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정권 지지자가 아니면 아무것도 될 수 없습니다. 특히 여성으로서 우리는 미래가 없는 삶을 살아야 하죠." 파리나의 고백은 이 투쟁이 이념의 싸움이기에 앞서, 한 개인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생존의 문제임을 일깨운다. 쿠르드족에게 남녀 평등은 구호가 아닌 실천이며, 여성의 해방이야말로 민족 해방의 선결 조건이라는 믿음이, 이 험준한 산악 지대에서 혼성 부대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발현되고 있다.

 

드론의 눈이 지켜보는 디스토피아적 전장

 

"쿠르드족에게는 산 외에는 친구가 없다"라는 오래된 격언은 이제 현대전의 무자비한 기술 앞에 그 신성함을 위협받고 있다. 과거 산맥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요새였으나, 이제는 이란 정권의 정밀 타격 드론이 머리 위를 상시 비행하며 모든 움직임을 감시한다.

 

이란 국경에서 21km 떨어진 캠프의 밤은 더 이상 고요하지 않다. 보이지 않는 하늘의 눈(드론)이 훈련 중인 대원들의 체온을 감지하고, 테헤란의 명령 한 마디에 정밀 미사일이 기지를 초토화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산맥이 제공하던 전통적인 은신처로서 기능이 상실된 이 역설적인 풍경은, 쿠르드 반군이 직면한 가장 가혹한 물리적 위협이자 2026년 중동 전장의 서늘한 현실이다.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겨울이 없는 땅’

 

이라크 북부 산맥에 혹독한 겨울이 찾아왔다. 47년째 지속되는 이슬람 공화국의 완고한 정치적 겨울만큼이나 살을 에듯 차가운 눈보라가 치지만, 젊은 페슈메르가들은 진흙탕 속에서 훈련을 멈추지 않는다. 파리나는 "우리는 이 길에 목숨을 걸었으며, 희생은 당연한 것"이라고 담담히 말한다.

 

이란 정권은 내부적인 시위와 경제 위기로 인해 통제력이 약화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궁지에 몰릴수록 외부의 반군 기지를 향한 공격은 더욱 잔혹해지고 있다. 낡은 소총을 든 청년들과 최첨단 드론의 비대칭적 대결, 그리고 억압적인 신권 정치와 젊은 세대의 갈망이 부딪히는 이 산맥은 중동 정세의 거대한 축소판이다. 수많은 희생 끝에 그들이 꿈꾸는 것은 단 하나, 드론의 감시가 사라진 하늘 아래서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자유로운 땅이다. 산맥의 주인들은 오늘도 그 꿈을 위해 눈 덮인 봉우리를 묵묵히 오르고 있다.

 

작성 2026.02.09 16:27 수정 2026.02.09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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