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사득환] 베네수엘라 사태와 국제질서의 두 얼굴: 현실주의와 자유주의의 교차

▲사득환/경동대학교 교수 ⓒ한국공공정책신문

 [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미국의 기습적인 베네수엘라 공습과 마두로 대통령 체포 작전은 단일한 외교·군사 사건을 넘어 국제질서가 어떤 논리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다시 묻는 계기가 되고 있다. 국제사회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중국과 러시아, 이란은 이를 주권 침해이자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했으며, 유럽 국가들은 민주적 전환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무력개입의 정당성에는 거리를 두었다.

 

이 지점에서 국제관계를 설명하는 두 이론, 즉 현실주의와 자유주의를 한번 불러와 보자. 현실주의의 관점에서 이번 사태는 예외가 아니라 국제정치의 본질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현실주의는 국제체제를 무정부 상태로 전제하며, 국가를 생존과 국익을 최우선시하는 행위자로 본다. 국제법과 제도는 강제력이 없으며, 강대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 앞에서는 쉽게 무력해 진다. 베네수엘라 침공은 국제 마약유통 근절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패권 유지와 서반구에 대한 전략적 통제라는 현실주의적 계산이 깔려 있다. 특히 이번 사태는 미국이 최근 국가안보전략(NSS)에서 강조한 이른바 ()먼로주의를 행동으로 옮긴 사례로 해석할 수 있다. 과거 먼로주의가 영향권 선언에 머물렀다면 오늘날의 신먼로주의는 미국의 핵심 이익이 침해될 경우 군사력과 경제력을 동원해 적극 개입하겠다는 보다 공격적인 현실주의적 전략이다. 미국의 베네수엘라에서의 군사행동, 대만 방어에 대한 명시적 의지, 동맹국 역할에 대한 강조는 모두 동일한 전략적 맥락 위에 있다.

 

반면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이번 사태는 국제협력과 제도중심 질서가 직면한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자유주의는 국제기구, 국제법, 경제적 상호의존이 국가 간 갈등을 완화하고 질서와 협력을 촉진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사태는 강대국의 핵심 이익이 걸린 상황에서 다자주의와 국제기구가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유엔과 국제기구는 규범적 비판 이상의 실질적 개입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는 이번 사태를 단순한 힘의 정치로만 환원하지 않는다. 베네수엘라 사태는 군사행동인 동시에 경제·공급망 전략과 결합된 외교행위로 본다. 세계 최대 석유 매장국인 베네수엘라의 에너지 인프라 복구와 국제시장 복귀는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안정, 상호의존의 회복, 나아가 세계경제의 안정이라는 자유주의적 목표와도 연결된다. 군사력은 개입의 수단이었지만 궁극적 목표는 경제질서의 재편이라는 점에서 자유주의적 요소 역시 내재되어 있다.

 

중국에 대한 메시지도 이 두 관점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작전 직전 중국 특사가 마두로 대통령과 접촉하고 있는 순간을 노력다는 사실은 단순히 체포정보 획득을 넘어 미국이 중국을 체제 경쟁자이자 공급망 경쟁상대로 인식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따라서 현실주의적으로는 미·중 패권경쟁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자유주의적으로는 에너지·공급망을 둘러싼 상호의존 구조를 주도적으로 재편하겠다는 시도이다.

 

한반도에 주는 함의는 더욱 복잡하다. 현실주의적으로 볼 때, 마두로 체포와 같은 메시지는 북한에 투영될 경우 상대 정권에게 퇴로 없는 압박을 인식시키며 이는 핵·미사일 도발로 대응할 가능성을 높인다. 실제로 북한은 과거에도 체제안전 보장이 흔들릴 때마다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방식으로 반응해 왔다. 반면 자유주의적 관점에서는 우방간의 제도적 틀과 경제적 상호의존, 그리고 위기관리 메커니즘을 통한 우월적 질서를 강요한다. 어느 쪽 논리가 실제 정책을 주도하느냐이다.

 

결국 이번 베네수엘라 사태는 국제질서가 현실주의의 힘의 논리로 수렴하고 있지만 자유주의적 요소를 완전히 상실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동시에 보여준다. 특히 미국 입장에서는 규범과 제도는 약화됐지만 사라지지는 않았고, 군사력은 다시 중심에 섰지만 경제와 공급망이라는 자유주의적 변수가 그 행동 방향을 제약하고 있다. 특히 남미라는 가까운 안방에서의 중국의 군사적 영향력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음으로써 미국 패권주의의 굴기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 외교가 취해야 할 전략 역시 이 이중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 억지와 위기관리라는 현실주의적 토대 위에서 에너지 공급망 재편과 재건사업 참여라는 자유주의적 실리를 결합해야 한다. 동시에 중국과의 관계는 관리가능한 경쟁으로 조율하고, 북한의 군비증강을 억제하는 보다 예술적인 다층적 외교 전략이 요구된다. 국제정치는 이상과 현실 중 하나를 선택하는 영역이 아니다. 현실주의의 냉정한 토대 위에 자유주의의 제도와 협력을 어떻게 접목하느냐가 오늘날 외교전략의 성패를 가른다. 베네수엘라 사태는 그 오래된 이론적 질문을 다시 현실로 불러내고 있다.

 

사득환 / 행정학박사

경동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한국공공ESG학회 회장

한국지속가능발전학회 부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작성 2026.01.06 14:10 수정 2026.01.0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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