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민병돈] 탄소배출권, 규제가 아닌 기회의 시장

 

 탄소배출권 거래제는 한때 기업들에게 규제의 또 다른 형태로만 여겨졌다. 감축 의무를 맞추기 위해 비용을 지출해야 하고, 복잡한 보고 체계와 불확실한 배출총량은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세계의 흐름은 이미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탄소배출권은 규제가 아니라 새로운 성장의 기회로 재해석되고 있으며, 이 변화는 글로벌 시장에서 이미 확고한 규칙이 되었다. 기후위기가 산업 경쟁력의 기준으로 자리 잡은 지금, 탄소배출권은 경제와 제도의 변화를 이끄는 핵심 축이 되고 있다.

 

 유럽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탄소배출권 가격은 시장의 신호 역할을 해왔다. 감축을 잘하는 기업은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지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은 비용 압박을 받는다. 이 단순한 구조는 “환경 규제는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낡은 주장을 뒤집는다. 분명한 신호가 주어지면 기업은 감축 기술에 투자하고, 투자된 기술은 장기적으로 비용 절감과 경쟁력 강화로 이어진다. 이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문제는 한국의 상당수 기업이 아직도 배출권을 “벌칙 회피 비용” 정도로만 이해하며 시장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탄소저감 활동의 데이터 계측과 정량화 시스템 구축이다. 지금까지 많은 기업과 개인이 다양한 방식으로 탄소를 줄여 왔지만, 이를 객관적으로 증명하고 시장에서 가치화할 수 있는 체계는 충분하지 않았다. 감축량을 인정받기 어렵다 보니 참여 동기도 떨어지고, 시장 자체도 성장의 한계를 안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기록 수준을 넘어서 데이터 기반의 계측·검증(MRV) 시스템을 사회 전반에 구축하는 것이다. 이는 기업뿐 아니라 개인, 지역사회, 시민단체 모두가 감축의 주체가 될 수 있게 만드는 핵심 인프라다.

 

 데이터가 투명해지면 감축 결과는 신뢰할 수 있는 자산이 되고, 그 자산은 곧 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가치로 전환된다. 이 구조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으면 자발적 탄소감축 시장(Voluntary Carbon Market, VCM)의 폭발적 확장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 된다. 시민이 생활 속에서 기록한 감축 활동, 지역사회 환경 개선 프로젝트, 중소기업의 에너지 효율화 성과까지 모두 정량화되고 인증을 받을 수 있다면, 감축의 주체는 더 이상 대기업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는 환경감시국민운동본부가 강조해온 ‘참여 기반의 녹색전환’이 실제 시장질서 속에서 실현되는 길이기도 하다.

 

 문제는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언제 본격적으로 만들 것이냐’다. 탄소저감 데이터를 표준화하고, 플랫폼을 통해 자동으로 측정·검증되며, 시민과 기업이 이를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체계를 국가적 역량으로 구축해야 한다.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누적 데이터는 곧 기술력이고, 기술력은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는 힘이다. 감축 데이터를 정확히 쌓은 기업은 배출권 확보와 비용 절감은 물론, 공급망 ESG 규제에서도 우위를 점하게 된다. 반대로 감축 결과를 증명할 수 없는 기업은 시장에서 불리한 위치를 피할 수 없다. 이제는 배출권을 보유하는 것이 경쟁력이고, 감축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이 생존 전략이다.

 

 물론 험난한 과제도 존재한다. 중소기업의 기술적 접근성 문제, 검증 절차의 복잡함, 시장을 왜곡할 수 있는 투기적 요소 등은 반드시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시장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 설계의 문제일 뿐이다. 제대로 설계된 시장은 공정하고 투명하게 작동한다. 시민사회와 기업, 정부가 함께 협력한다면 현실적인 개선안을 마련할 수 있고, 이는 오히려 한국형 탄소시장 모델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 환경감시국민운동본부는 감시와 대안을 동시에 제시하는 단체로서, 데이터 기반 감축 체계의 정착이야말로 가장 실질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전환이라고 확신한다.

 

 탄소배출권은 이제 규제의 상징이 아니라 미래 경제 질서를 결정짓는 언어다. 한국이 이 언어를 얼마나 정확히 해석하고 얼마나 빠르게 적응하느냐가 산업 경쟁력은 물론, 시민사회 전체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준비다. 감축 능력을 데이터로 증명하는 나라, 개인과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시장을 갖춘 나라가 미래의 주도권을 잡는다. 탄소배출권은 선택이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필수 전략이다. 이 시장을 기회로 전환하려는 지금의 선택이 한국의 기후경제를 다시 세우는 결정적 출발점이 될 것이다.

 

 

 

 

 

 

 

 칼럼리스트 민병돈

 현) 환경감시국민운동본부 사무총장

 현) (사)환경보전대응본부 사무총장

 현) 에코인홀딩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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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5.12.04 10:32 수정 2025.12.04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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