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이중성: 안전거리 뒤에 숨은 영혼의 민낯

-구원은 간절히 원하지만, 삶에 대한 하나님의 간섭 거부하며 '안전거리' 두려는 우리의 이중적 모습.

-이런 거리 두기는 삶의 주인 자리를 지키려는 강한 자아 때문, 이는 결국 신앙의 영적 무기력을 낳는다.

-숨바꼭질 멈추고 두려움 선 넘어 하나님 품으로 완전히 들어오는 용기만이 진정한 회복을 가져온다.

▲ AI 이미지 (제공: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침묵 속에 감춰진 모순된 기도

 

우리의 내면 깊은 곳, 아무도 들여다보지 못하는 그 은밀한 방에는 모순된 두 개의 기도 제목이 얽혀 있다. 하나는 절박한 구조 요청이다. "하나님, 저를 구원해 주소서. 저를 지켜 주소서. 당신이 없이는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진심이다. 삶의 파도가 거세지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울 때, 혹은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벽 앞에 섰을 때,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찾는다. 그분의 전능하신 손길이 내 삶에 닿기를, 그 따스한 임재가 내 차가운 영혼을 덮어주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러나, 그 기도가 끝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또 다른 기도가 소리 없이 시작된다. "하지만 하나님, 너무 가까이는 오지 마옵소서. 내 삶의 모든 방문을 열지는 마시고, 거실까지만, 딱 손님용 소파까지만 계시옵소서." 이것 또한 우리의 진심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만,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은 부담스러워한다. 구원자로서의 하나님은 환영하지만, 내 삶을 송두리째 간섭하고 지휘하는 주인으로서의 하나님은 정중히 사양한다. 이 이중적인 마음, 이것이 오늘날 수많은 크리스천이 겪고 있는 영적 딜레마의 실체다.

 

거룩한 불꽃과 적당한 거리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하나님과의 '안전거리'를 계산한다. 마치 모닥불을 쬐는 것과 비슷하다. 불이 너무 멀면 춥고 어둡다. 그래서 우리는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거리까지는 다가간다. 교회에 출석하고, 헌금을 하고, 적당한 봉사를 하며 '크리스천'이라는 정체성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불속으로 뛰어들지는 않는다. 너무 가까이 가면 나 자신이 타버릴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나의 자아, 나의 고집, 은밀하게 즐기는 세상의 쾌락, 내가 세운 나의 계획들. 하나님과 너무 가까워지면 이 모든 것이 그분의 거룩한 불꽃 앞에서 태워질 것을 우리는 직감적으로 안다. 그래서 우리는 적당히 따뜻하되, 화상은 입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기가 막히게 유지한다. 이것을 우리는 '지혜'라고 부르기도 하고, '균형 잡힌 신앙'이라고 포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다. 내 삶의 안락함을 위해 신을 엑세서리처럼 곁에 두려는 종교적 소비주의일 뿐이다.

 

아담의 유산: 숨바꼭질하는 영혼

 

이러한 거리 두기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범죄 한 직후 보였던 반응을 기억하는가? 그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지만, 하나님 앞에 나서지도 않았다. 그는 나무 뒤에 숨었다. 하나님이 두려워 숨었으나, 동산을 떠나지는 못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꼭 그와 같다.

 

우리는 하나님을 싫어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좋아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것은 두려워한다. 친밀함은 곧 '노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의 부끄러운 치부, 위선, 탐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을 견딜 수 없기에 우리는 종교적인 의식이라는 무화과나무 잎 뒤로 숨는다. "저는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감히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라는 말은 때로 겸손으로 들리지만, 실상은 하나님이 내 삶의 통제권을 가져가실까 봐 두려워하는 방어 기제일 때가 많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마치 까다로운 직장 상사나, 가끔 안부를 묻는 먼 친척처럼 대한다. 관계는 맺고 있으되, 삶은 공유하지 않는다. 선을 긋는다. "여기까지는 하나님의 영역, 그러나 이 선 너머는 나의 사생활입니다." 이 경계선 긋기가 신앙생활의 가장 큰 비극을 낳는다.

 

뿌리 깊은 자기 중심성과 영적 무기력

 

이 거리 두기 신앙의 뿌리를 파고들면, 결국 만나는 것은 거대한 '자아(Ego)'다. 하나님과 거리를 두어야만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은, 아직도 내 인생의 왕좌에 내가 앉아 있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뜻이다.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만큼만 하나님이 움직여 주기를 바라는 것. 이것은 신앙이 아니라, 신을 내 욕망의 도구로 길들이려는 시도다.

 

이런 신앙의 가장 치명적인 결과는 '하나님의 역사가 없다'는 것이다. 전선이 전원에 헐겁게 연결되어 있으면 불은 켜지지 않는다. 접촉 불량이다. 하나님과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하는 것은, 코드를 뽑아놓고 냉장고가 시원해지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아무런 감동도, 변화도, 능력도 없는 건조한 종교 생활. 십자가의 감격은 사라지고 의무감만 남은 예배. 세상과 구별되지 않는 가치관. 이 모든 영적 무기력증은 우리가 하나님을 '부담스러운 존재'로 여기며 밀어낸 그 거리만큼 비례해서 찾아온다. 하나님은 인격이시다. 그분은 우리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두드리시지, 문을 부수고 강제로 들어와 우리를 점령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거리를 두면, 하나님도 딱 그만큼 우리를 기다리신다. 그리고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우리의 영혼은 서서히 말라간다.

 

선을 넘는 용기: 탕자에서 아들로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안전한 거리에서 서성이는 구경꾼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위험을 무릅쓰고 아버지의 품으로 뛰어드는 자녀가 될 것인가.

 

진정한 신앙은 '선을 넘는 것'이다. 내가 그어놓은 방어선, 나의 자존심, 나의 은밀한 죄악의 경계선을 넘어 하나님 품으로 완전히 투항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분의 거룩한 불은 우리를 태워 없애려는 파괴의 불이 아니다. 우리 안에 있는 불순물, 죄, 상처, 거짓된 자아를 태우고, 진짜 '나', 하나님이 원래 지으셨던 존귀한 형상을 정금처럼 드러내게 하는 정화의 불이다.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자유를 반납하는 것은 고통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좁은 문을 통과할 때,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내가 그토록 지키려고 했던 '나만의 세계'가 얼마나 초라한 감옥이었는지를.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그 친밀함이 얼마나 광대하고 자유로운지를.

 

더 이상 숨지 말자. 나무 뒤에서 나와야 한다. 거리 두기를 멈추고, 있는 모습 그대로 그분 앞에 나아가야 한다. 신앙은 하나님과의 거래가 아니라, 사귐이다. 그 사귐의 깊이만큼 우리 삶은 새로워질 것이다. 하나님은 부담스러운 감시자가 아니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사랑의 아버지시다. 이제 그 경계선을 지우고, 그분과 동행하라. 그때 비로소 멈춰있던 하나님의 역사가 당신의 삶 가운데 다시 흐르기 시작할 것이다.

 

작성 2025.11.21 07:27 수정 2025.11.21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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