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로맨스 스캠, 청년의 절망이 국제범죄로 번졌다

고수익 알바의 유혹, 절망한 청년의 함정

‘사후 대응’ 아닌 ‘사전 예방 외교’로 전환해야

청년이 떠나지 않아도 되는 나라가 해답이다

캄보디아 로맨스 스캠, 청년의 절망이 국제범죄로 번졌다

 

                 이헌석 논설위원(목사교수시사평론가)



고수익 알바의 유혹, 절망한 청년의 함정

사후 대응아닌 사전 예방 외교로 전환해야

청년이 떠나지 않아도 되는 나라가 해답이다

 

 

202510, 캄보디아에서 벌어진 대규모 로맨스 스캠 조직 사건은 단순한 해외 사기 사건으로 치부할 수 없다. 프놈펜과 시아누크빌 일대에서 한국인 64명이 범죄 연루 혐의로 송환되었고,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이 직접 구출한 3명의 청년이 감금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이 사건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국제 범죄의 복합적 현실이 교차한, 21세기형 인신착취의 민낯을 드러냈다.

 

캄보디아의 로맨스 스캠 조직은 더 이상 소규모 사기집단이 아니다. 이미 산업화된 범죄 시스템으로 발전해, 프놈펜과 인근 지역에는 50여 개의 범죄단지가 조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른바 웬치(Wench)’라 불리는 단지에서는 한 층 전체를 빌려 외부와 차단된 채 하루 10시간 이상의 온라인 사기 행위가 이뤄진다. SNS에서 피해자에게 접근해 호감을 유도하고, 신뢰를 쌓은 뒤 가상자산이나 투자 명목으로 자금을 송금받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사태는 결코 캄보디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태국, 미얀마, 라오스 등 동남아시아 일대에서도 모델 계약이나 현지 마케팅 알바라는 명목으로 유인된 외국인들이 감금·노역·사기 동원된 뒤, 심지어 장기 적출로 이어지는 비극적 사례가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범죄 네트워크는 국가 간 경계를 초월해 확산되고 있으며, 한국 청년 또한 그 잠재적 표적이 되고 있다. , 우리 청년들의 해외 취업이나 단기 알바 행보가 범죄조직의 인력 흡입구가 될 수 있다는 경고다.

 

이처럼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퍼진 국제 범죄의 연계 가능성은 몇 가지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다.
첫째, 해외 고수익 구인광고나 SNS 모집이 청년층을 노린 디지털 유인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둘째, 인신매매·강제노역·로맨스 스캠·보이스피싱·가상자산 세탁이 결합된 복합형 범죄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셋째, 범죄조직이 현지 정부 관료나 기업과 유착되어 있어, 단일 국가의 법 집행만으로는 근절이 어렵다.

 

문제의 본질은 여기에 다수의 한국 청년들이 동원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500만 원 고수익”, “게임 업체 고객센터 근무”, “해외 마케팅 인력 모집등의 광고에 속아 캄보디아나 인근 국가로 향한다. 그러나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여권을 압수당하고 감금되며, 강제노동과 폭력, 협박에 시달린다. 그들의 노동은 단순히 해외 일자리의 실패가 아니라, 경제적 절망이 범죄 구조 속으로 흡수된 비극이다.

 

이번 사건이 던지는 가장 복잡한 쟁점은 피해자이자 가해자라는 이중적 지위다. 강압적 환경 속에서 강제적으로 범죄에 참여했으나, 결과적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법은 죄를 묻되, 인권은 그들의 처지를 외면할 수 없다. 국가는 형사적 단죄 이전에, 인신매매와 강제노역 피해자에 대한 보호 체계를 작동시켜야 한다. 심리적 치유, 법률 지원, 재취업 프로그램 등 재사회화를 위한 지원이 병행될 때 비로소 정의는 완성된다.

 

더불어 이 사건은 국제 범죄 구조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에 따르면, 캄보디아·태국·미얀마 등지에서 활동하는 온라인 사기 조직의 상당수가 중국계 폭력조직 삼합회와 연계되어 있으며, 현지 정부 관료와 유착해 범죄단지를 보호받고 있다. 미국과 영국이 최근 캄보디아 기반 스캠 조직에 제재를 가한 것도 이 같은 국제적 연계 구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 외교부는 한-캄보디아 합동 대응 TF를 구성했고, 인터폴과 공조해 적색수배자 추적을 병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어디까지나 사후적 대응에 불과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전 예방 외교청년 보호 정책이다.
해외 취업 사기 경보 체계를 구축하고, 현지 영사관의 인력과 예산을 확충하며, 해외 취업 희망자 대상 범죄 예방 교육을 제도화해야 한다. 국민이 해외에서 유인·감금·착취당하는 현실이 반복되는 한, 외교적 성명만으로는 아무런 실효가 없다.

 

무엇보다 근본적 원인은 해외가 아니라 국내에 있다. 캄보디아의 어둠 속으로 향한 그들의 발걸음은, 한국 사회 내부의 청년 절망이 낳은 결과다. 안정적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현실, 고착된 경제적 불평등, 불투명한 미래가 고수익 해외 일자리라는 거짓 약속을 현실처럼 들리게 만든다. 범죄 예방의 근본적 해법은 결국 청년이 떠나지 않아도 되는 사회, 정상적 노동이 보상받는 사회를 만드는 데 있다. 정부는 AI·로봇·디지털 산업 등 미래 분야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청년층의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캄보디아 로맨스 스캠 사태는 우리 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국가는 국민을 어디까지 보호해야 하는가.”범죄조직의 손아귀에 갇힌 국민을 구출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다. 그러나 그 이후, 그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어떤 길로 인도할 것인가는 국가의 품격을 결정한다. 한국은 인신매매방지협약과 강제노동금지협약 등 국제 규범에 근거해, 인도주의와 법치의 균형을 세워야 한다.

 

이번 사건은 단지 해외 범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가 청년의 불안을 얼마나 오래 방치해왔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절망이 범죄로 이어지지 않도록 막는 일, 그것이 국가의 책무이자 사회의 의무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호한 단속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예방이다.
청년이 다시는 로맨스 스캠의 노동자로 전락하지 않도록, 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 나서야 한다.
그것이 이번 사태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무겁고도 명확한 교훈이다.



작성 2025.10.19 02:04 수정 2025.10.19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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