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미워서가 아니라, 다시 상처받기 싫어서 — 초등 ADHD 아동이 전화를 끊는 이유

가정 붕괴 이후, ADHD 아동의 정서 구조와 ‘보호 본능’

죄책감에 갇힌 아버지, 그리고 ‘화해’라는 이름의 통제 욕망

용서가 아닌 회복으로: 부모와 아이가 다시 마주하는 법

[놀이심리발달신문] 아빠가 미워서가 아니라, 다시 상처받기 싫어서 — 초등 ADHD 아동이 전화를 끊는 이유 김주연 기자 

 

“왜 아이는 전화를 받지 않을까?”

 

“아빠가 미워서 그런 게 아니에요. 그냥… 또 아플까 봐요.” ADHD를 가진 초등학교 5학년 아이의 한마디는, 이혼 가정의 심리를 가장 간결하게 요약한다. 아이는 감정의 깊이를 설명할 언어는 부족하지만, 상처를 예감하는 능력은 기막히게 예민하다. 이혼 후 몇 년이 지나도 아이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러나 그 행동 뒤에는 ‘분노’보다는 자기 보호 본능이 숨어 있다. 정신의학적으로 ADHD 아동은 감정 조절 능력이 취약하다. 자극에 대한 반응이 크고, 감정의 잔향이 오래간다. 이 아이에게 ‘아버지의 전화’는 단순한 통화가 아니라, 과거의 폭풍을 다시 불러오는 ‘감정 자극’ 그 자체다. 아이의 마음속에는 ‘아버지를 사랑했던 기억’과 ‘그 아버지가 엄마를 울렸던 기억’이 공존한다. 이 두 기억이 충돌할 때, 아이는 ‘중단’이라는 가장 본능적인 방법을 택한다. 즉, 회피는 미움이 아니라, 생존의 언어다.


 

가정 붕괴 이후, ADHD 아동의 정서 구조와 ‘보호 본능’

 

세계적인 임상심리학자 러셀 A. 바클리(Russell Barkley)의 연구에 따르면, ADHD 아동은 정서적 반응이 과도하게 증폭되는 특성을 지닌다. 특히, 부모 간 갈등이나 외도, 분리와 같은 감정적 충돌은 아이의 신경학적 시스템에 ‘위협 신호’로 기록된다. 아이의 뇌는 스트레스 상황을 단순히 ‘슬픔’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대신, 그 상황을 재경험하지 않기 위해  회피 행동(avoidance behavior)을 학습한다. 즉, 아버지의 전화가 울릴 때 아이의 뇌는 “또 싸움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엄마가 울지도 모른다”는 감정 기억(emotional memory)을 즉각 불러온다. 이때 ADHD 아동은 충동적으로 ‘받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린다. 이는 성숙한 판단이라기보다는 감정적 과부하를 피하기 위한 신경학적 방어다. 결국, 아이는 아버지를 벌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죄책감에 갇힌 아버지, 그리고 ‘화해’라는 이름의 통제 욕망

 

이혼 후 아버지는 종종 “나는 잘못했지만, 그래도 아버지니까 아이가 이해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뒤에는 죄책감보다 자기합리화된 통제 욕망이 숨어 있다. 이 아버지는 외도로 결혼을 무너뜨렸고, 이혼 과정에서 아내 명의로 사업자금 대출까지 받게 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돈은 내가 벌게, 대신 넌 현모양처가 되어라”라고 말한다. 이 말에는 ‘경제적 우위’로 감정적 책임을 덮으려는 심리가 담겨 있다. 임상심리학적으로 이는 ‘도덕적 자기정당화(moral licensing)’라고 불린다. 자신이 일부 잘못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다른 영역의 공헌’을 내세워 면죄부를 받으려는 심리다. 즉, 그는 “외도는 잘못했지만, 가족을 위해 돈은 벌고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그러나 아이는 이런 ‘정당화된 사랑’을 감지한다. ADHD 아동은 언어보다는 감정의 일관성에 민감하다. 아버지가 죄책감으로 전화를 걸 때, 아이는 그 진심보다 불안의 떨림을 먼저 감지한다. 결국, 그 전화는 “보고 싶다”가 아니라 “나를 용서해달라”는 무의식의 외침이 된다. 아이의 뇌는 그것을 ‘부담’으로 인식하고, 다시 끊는다.

 


용서가 아닌 회복으로: 부모와 아이가 다시 마주하는 법

 

아이의 전화를 받게 만드는 방법은 단 하나다. 통제하려 하지 않는 것. 심리치료에서 ‘재결합(reunion therapy)’은 관계 회복이 아니라, 감정의 ‘안전감’을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아버지가 아이에게 전화를 걸 때, “왜 받지 않니?”가 아니라 “괜찮을 때 이야기하자”라고 말하는 순간, 아이의 방어는 조금씩 풀린다. ADHD 아동에게 필요한 것은 아버지의 완벽한 사과가 아니라, 예측 가능한 감정 환경이다. 꾸준한 톤, 일관된 행동,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는 상처 주지 않겠다’는 무언의 신뢰가 아이의 뇌에 안전 신호로 기록될 때, 비로소 회복이 시작된다. 아버지는 아내를 탓하기 전에, 자신이 만든 관계의 ‘불균형’을 직시해야 한다. 진정한 화해는 ‘용서받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안전한 세계를 다시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때, 아이는 처음으로 전화를 받을 것이다. 그건 미움의 해소가 아니라, 두려움의 해소다.

 


미움은 관계의 끝이 아니라, 다시 사랑을 배우는 시작이다

 

이 아이가 전화를 받지 않는 이유는 단순한 반항이 아니다. 그건 상처를 기억하는 뇌가 스스로를 지키려는 방어의 언어다. 그리고 아버지가 진정으로 아이를 사랑한다면, 해야 할 일은 ‘설득’이 아니라 기다림이다. “아빠가 미워서가 아니라, 다시 상처받기 싫어서.” 그 아이의 침묵은, 사실 가장 정직한 대화다.

작성 2025.10.13 16:49 수정 2025.10.13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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