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치료의 미래는 ‘통합적 돌봄 시스템’에 있다

약보다 관계, 기술보다 사람

치료의 패러다임은 이미 변하고 있다

약물, 교육, 그리고 사회의 교차점

[놀이심리발달신문] 자폐 치료의 미래는 ‘통합적 돌봄 시스템’에 있다 조우진 기자 

약보다 관계, 기술보다 사람

 

“자폐 치료의 진짜 혁신은 약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연결에서 온다.” 이 문장은 최근 The Lancet Psychiatry(2024)에서 강조한 문구다.

2025년 9월, 서울 강남에서 열린 제3회 대한소아청소년 행동발달증진학회 학술대회에서 아스트로젠과 학회가 MOU를 체결했다는 소식은 단순한 제약·의료 협력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아스트로젠이 개발 중인 스페라젠(Speragen)은 자폐스펙트럼장애(ASD)의 핵심 증상 개선을 목표로 하는 후보물질이다. 그러나 이 회사가 진정 주목받은 이유는 약물 그 자체가 아니라, ‘스텔라스텝스(Stellar Steps)’라는 일상생활동작 훈련 프로그램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중증 발달장애 청소년들이 사회적 역할과 자존감을 회복하도록 돕는 ‘비약물적 돌봄 시스템’이다. 즉, 생물학적 치료를 넘어서서 사회적 기능 회복이라는 새로운 치료 패러다임이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치료의 패러다임은 이미 변하고 있다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자폐 치료는 ‘증상 억제 중심의 약물 치료’에 머물러 있었다. 항정신성 약물, 세로토닌 조절제(SSRI), 행동교정요법이 주요 접근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증상의 일시적 완화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자폐인의 삶의 질 향상에는 한계가 있었다. 최근 5년 사이 상황은 급변했다. Nature Neuroscience(2023)은 “자폐 치료의 성공은 약물 반응이 아닌 사회적 적응도로 측정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JAMA Pediatrics(2024)은 “신경발달장애 치료에서 교육·가족·정서 훈련이 함께 이뤄질 때 신경망 가소성이 가장 크게 향상된다”고 보고했다. Cell Reports(2024)에서는 자폐 아동의 시냅스 연결망이 사회적 상호작용 경험에 따라 재조직된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이제 세계 의학계는 자폐 치료를 하나의 ‘질병 치료’가 아니라, 사회적 회복(social rehabilitation)과 신경학적 적응(neuro-adaptation)이 공존하는 통합적 시스템으로 바라보고 있다. 아스트로젠의 행보는 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정면으로 호응하고 있다.

 


약물, 교육, 그리고 사회의 교차점

 

이번 아스트로젠–행동발달학회 MOU는 단순한 임상 파트너십이 아니다. 협약의 핵심은 “발달장애아동 치료 시스템 개선, 의료진 교육 강화, 사회 인식 제고, 정책 제언”이다. 이 네 가지는 자폐 치료의 전 단계를 하나의 생태계로 엮는 기둥이 된다.

 

① 약물 치료 (Medical Layer)
아스트로젠의 스페라젠은 시냅스 단백질 조절을 통해 사회적 행동 결핍을 완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Cell지(2024)는 “시냅스 단백질 SHANK3 조절이 사회적 인식 회로를 복원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이 연구는 동시에 “약물 단독으로는 장기적 사회 회복을 이끌 수 없다”고 지적했다.

 

② 행동·교육 치료 (Behavioral Layer)
학회가 운영하는 행동발달 증진 프로그램은 정서 인식, 언어 자극, 사회 모방 훈련을 통합한 교육형 모델이다. 이는 미국의 Applied Behavior Analysis (ABA)를 한국 사회에 맞게 재구성한 형태로, 약물 효과를 ‘사회적 경험’으로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③ 가족 및 지역사회 기반 지원 (Social Layer)
박양동 이사장이 제시한 ‘가족 주치의 모델’은 지역 중소병원이 참여해 돌봄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구조다. 이는 스웨덴의 Karolinska Institute Neurodiversity Clinic과 유사한 시스템으로, 자폐 치료를 지역 단위의 연속 돌봄 시스템으로 확장하는 시도다. 이 세 가지 층위는 이제 자폐 치료의 새로운 삼각축이 되고 있다 —신경과학 + 교육 + 사회적 돌봄 = 통합적 회복 생태계

 


통합 시스템이 가져오는 실질적 변화

 

자폐 치료를 ‘통합적 돌봄 시스템’으로 설계할 때 생기는 가장 큰 변화는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이다. The Lancet Psychiatry(2024)의 장기 코호트 연구에 따르면, 약물치료 단독군보다 약물·행동·가족 개입이 결합된 통합치료군의 5년 후 사회적 자립률이 3.7배 높았다. 또한, 일본 도쿄대의 2023년 연구에 따르면, 통합치료를 받은 자폐 아동의 68%가 “학교·직업·가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고 보고했다. 이는 자폐 치료의 목표가 단순히 증상 완화가 아니라, 삶의 참여(Participation in Life)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은 이제 이 변화의 문턱에 서 있다. 아스트로젠과 학회의 협력은 제약, 의료, 교육, 지역사회가 하나의 목표 아래 연계되는 ‘국가형 통합 돌봄 모델(National Integrated Care Model)’의 가능성을 열었다.

 


자폐 치료, 이제는 사회의 과학이다

 

자폐 치료의 미래는 더 이상 병원의 울타리 안에 머물러 있지 않다. 그것은 사회 전체가 함께 움직이는 과학적 돌봄 체계로 진화하고 있다. 신약은 뇌를 바꾸지만, 관계는 삶을 바꾼다. 아스트로젠의 스페라젠은 ‘약물 혁신’의 이름으로 주목받지만, 실은 그 이면에 ‘사람 중심의 치료 철학’이 있다. 그 철학이 ‘스텔라스텝스’ 같은 프로그램과 만나며 진짜 혁신을 만들어내고 있다. 통합적 돌봄 시스템은 자폐 아동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사회를 꿈꾸는가에 대한 선언이다. 치료는 약이 아니라, 사람과 사회가 함께 만드는 회복의 구조다.

작성 2025.10.12 09:26 수정 2025.10.12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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