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누구와 먹을까 3

 

 

 

 

오늘은 누구와 먹을까 3

 

 

 

저녁 무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묵직한 장바구니가 들어왔다.

 

7층 아주머니 분자였다.

양손에 가득 찬 채로 숨을 몰아쉬며 내 안에 들어서자, 나는 그 무게를 함께 느꼈다.

그 바구니 안에는 반짝이는 보라색 가지가 가득했다.

 

뒤따라 들어온 건, 무뚝뚝한 얼굴의 남편 철수였다.

그는 장바구니를 흘끗 보더니, 곧바로 투덜거렸다.

 

“에이, 또 가지야? 나는 이런 거 안 먹는다니까.”

 

“당신, 방송에서 봤잖아요. 가지가 혈압에도 좋고, 열도 내려준다잖아. 몸 생각 좀 하세요.”

 

“난 고기만 먹어도 멀쩡해.”

 

분자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손에 힘을 더 주어 장바구니를 끌어안았다.

 

나는 그 침묵 속에서 오래된 부부만이 나눌 수 있는 기묘한 정을 읽었다.

 

며칠 후, 새벽.

내 안에 혼자 탄 사람은 철수였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들고, 어설프게 화면을 넘겼다.

검색창에는 이런 글이 떠 있었다.

 

“가지볶음 맛있게 하는 법”

 

나는 순간, 멈칫했다.

무뚝뚝한 얼굴 뒤에 숨은 그의 마음을 엿본 듯해서였다.

 

철수는 마치 누군가에게 들키기라도 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물론, 그는 몰랐다. 내가 모든 걸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다음 날 아침, 분자가 내 안에 들어섰다.

손에는 장바구니 대신 작은 반찬통이 들려 있었다.

입가엔 옅은 미소가 맴돌았다.

 

“당신, 이거… 언제 배운 거예요?”

 

분자의 목소리에는 놀람과 기쁨이 섞여 있었다.

철수는 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냥… 인터넷에 다 나오더라고.”

 

“맛있었어요. 정말.”

 

짧은 대화였지만, 그 속엔 오랜 세월 함께해 온 사람만이 알아볼 수 있는 깊은 따뜻함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순간을 오래 간직했다.

가지볶음의 향이 퍼진 그날 아침, 두 사람의 사랑은 다시 조용히 자라나고 있었다.

 

늦은 밤, 조용히 열리는 문 사이로 은은한 향기가 흘러들었다.

치킨의 기름냄새도, 피자의 매콤함도 아닌, 쓰디쓴 커피 향이었다.

 

나는 곧 알 수 있었다. 13층 민호 아저씨였다.

민호는 늘 작은 봉투를 들고 내 안에 들어섰다.

그 안에는 은밀히 구해온 원두가 들어 있었다.

 

방송은 매일 새로운 음식을 떠들썩하게 내세웠지만, 민호는 늘 고집스레 커피를 마셨다.

그가 내 안에 서 있을 때면, 얼굴에는 묘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알았다. 그 커피 향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잃어버린 누군가를 기억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어느 날 오후, 예상치 못한 동행이 생겼다.

7층 교수의 딸, 중학생 은서가 작은 책가방을 메고 내 안에 들어섰다.

 

민호와 은서, 두 사람은 마주쳤다.

은서는 민호가 들고 있는 원두 봉투를 보더니 눈을 반짝였다.

 

“와… 커피네요! 무슨 향이에요?”

 

민호는 순간 놀란 듯했지만, 곧 천천히 대답했다.

 

“예멘 모카… 아주 오래된 맛이지.”

 

“저는 아빠가 몰래 내려주는 커피 냄새 좋아해요. 쓰지만… 향이 참 따뜻하잖아요.”

 

은서의 말에, 민호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그의 기억 속에서 오래된 목소리가 겹쳐졌다.

 

“민호 씨, 오늘은 어떤 원두예요? 향이 참 좋다…”

 

아내의 웃음소리였다.

 

그날 이후, 은서는 종종 민호와 함께 내 안에 탔다.

 

책 이야기를 하거나, 커피 향에 대해 물어보곤 했다.

 

민호는 묵묵히 대답했지만, 얼굴에는 이전에 없던 부드러운 기색이 스며들었다.

 

나는 그 작은 변화를 누구보다 빨리 느꼈다.

 

씁쓸한 커피 향이 점점 따뜻하게 변해가는 것을.

 

잃어버린 사람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대화가 그의 마음을 천천히 데우고 있었다.

 

커피 향은 여전히 쓰디썼지만, 그 속에는 오래된 그리움과 새로운 온기가 나란히 어울려 피어올랐다.

 

삶을 바꾸는 동화 신문 기자 kjh0788@naver.com
작성 2025.08.28 10:16 수정 2025.08.28 10:16

RSS피드 기사제공처 : 삶을 바꾸는 동화 신문 / 등록기자: 삶을 바꾸는 동화 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NEWS 더보기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101)
라오스로 떠나는 청년들, 아동 복지 패러다임 바꾼다
포항 상권 살리는 한동대 AI 창업 지원 사업 가동
AI 보안 패러다임 바꾼다, 에이아이딥 차세대 솔루션 공개
AI로 불법 현수막 꼼짝 마! 지자체 CCTV와 차량이 실시간 자동 추적..
공중위생관리법 위반 미용실, 무신고 유사 의료행위 심각… 포상금 최대 2..
대한민국을 함께 바꿀 기업 당신은 무엇으로 기억되겠습니까 #CCBS #공..
비오는 지금. 주님의 약속을 기다려봅니다. #찬양 #사랑 #예수님 #..
6근(눈귀코혀몸뜻)×6경(색성향미촉법)×3세(과거현재미래), 태양직경은 ..
#이용사자격증 #인천부평이용학원 한번에 합격했어..
ai365news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좋은사람 #행복나눔 #사랑나눔..
AI 매칭엔진 도입 2026 충청권 ICT 취업박람회 개최
국회 조형물 거장 정보원 작가, 50년 베일 벗는다...성북서 역대급 전..
반도체 끝났다고? 모건스탠리가 폭로한 하반기 주식 대이동 시그널
'제2회 전국 우리소리 경창대회' 종로에서 화려한 개막
자연의 모든 것이 대립과 조화로 움직인다고 보았기때문. 짝수는 균형과 안..
보양식을 먹어야 하는 날~。#jejuolletrail #ssicho
박상돈 교수의 좌충우돌 성경신학[19]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100)
경기도 토지거래허가구역 실거주·경작 사후조사 착수 | 부동산 투기 철퇴 ..
단 하나의 빛이 세상을 바꿨습니다 #선한영향력 #CCBS #칭찬위원연합회..
당 고종이 신라를 공격하려 한다는 군사정보를 신라 문무왕에게 급히 알리..
허동보의 일히일비(19) - 가려 먹는다고 큰 일이 나진 않아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99)
사랑이 세상을 하나로 만드는 순간 #사랑나눔축제 #칭찬위원연합회 #사랑으..
매듭은 지었지만, 자리는 지킵니다 | 계약해제 수용하라, 현대건설 결단하..
결단이 곧 계약해제 수용입니다 | 현대건설 결단하라, 계약해제 수용하라
유튜브 NEWS 더보기

브랜드 가치를 넘어선 존재의 거룩한 광휘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101)

나경원 국민의힘 국회의원 초청토론회

박상돈 교수의 좌충우돌 성경신학[19] - 이스라엘 3대 절기와 그 의미

두려움을 신뢰로 바꾸는 관계의 언어학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100)

상리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보장특구사업 상리마을 주민리더 도쿄탐방기

봄 (Feat.황정호)

흩어진 말들을 모아 하나의 질서로 세우는 법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99)

[50 Movements] #9 쇼스타코비치 왈츠 2번 | 리처드 용재 오닐 & 디토 오케스트라 | Shos...

병원 광고비, 어디서 새고 있습니까? 팀퍼포먼스 정용훈 대표가 말하는 AI 병원 마케팅

믿음의 선배들(8) - 타협을 모르는 순교자, 로마의 히폴리투스

개인vs법인사업자 장단점과 법인전환 절세방법(feat. 가족법인과 영업권으로 절세하기)

박상돈 교수의 좌충우돌 성경신학[18] - 사라진 열 지파, 흔적 찾기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98) 욕망의 수렁에서 건져 올린 영혼의 정교한 매뉴얼

#쏠롱구스노래들024 #SOS024 #광야 #Wilderness #정원진 #solongus #CCM #car...

HAUSER - Oblivion (Piazzolla)

칭찬사랑나눔 칭찬합시다축제시작된다. #칭찬문화

은혜와 감동이 물결치는 찬양 - 삼일노회 수련회

믿음의 선배들(7) - 열정의 신학자,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

박상돈 교수의 좌충우돌 성경신학[17] - 피 터지는 성전논쟁, 그 시작은?

캔바는 디자이너의 업무를 어떻게 바꾸었을까? l Canva 팝업 행사 디자인 과정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