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정유순] 바른 역사 찾기를 위한 마음의 기록

광복 80년, ‘기억의 침략’과 그 너머를 말한다

▲ 정유순/ 한국공공정책신문 칼럼니스트 ⓒ한국공공정책신문

 

[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2025815일은 일제로부터 광복된 지 80년이 된다. 1945년 대한민국은 일제의 사슬에서 풀렸는데, 그들의 농간으로 국토는 남북으로 갈라져 지금까지 휴전상태로 이어져 오고 있다. 과연 우리는 진정한 광복(光復)을 했는가? 국토는 반절이나마 자주권을 행사하여 다행이지만, 한민족(韓民族)의 국혼인 역사(歷史)는 일제가 덧씌운 식민사관에 휩싸여 아직도 미궁을 헤매고 있다. 단재 신채호(申采浩) 선생은 국토(國土)는 민족의 육체(肉體), 역사는 민족의 국혼(國魂)’이라고 했다.


복중(伏中)의 무더위와 집중 호우로 쏟아지는 8월의 하늘은 예측하기 힘들다. 날씨야 어찌 되었든 태극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조용히 바람을 품는다. 그 모습은 마치 이 땅의 독립을 위해 스러져간 수많은 이름 없는 영혼들의 숨결처럼 애틋하고도 단호하다. 한낮의 햇살은 평화롭지만, 마음 한켠은 어쩐지 무겁다. 국가를 지키다 스러져간 이들의 넋을 추모하며, 우리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짧은 묵념에 긴 역사의 고통을 담는다.


우리는 광복의 날을 맞이하여 동시에 또 하나의 족쇄를 기억해야 한다. 민족의 집단기억이 조직적으로 말살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192566(大正14, 칙령 제218), 일제는 식민사관의 본산이라 불리는 조선사편수회를 공식 발족하여 만 100년이 넘었다. 이 기관의 출범은 단순한 학술 사업이 아니었다. 조선 민족의 자긍심과 뿌리를 뽑고, 일본 제국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기억의 침략으로 연구(硏究)’가 아닌 편수(編修)’였으며, 진실을 가리는 편집(編輯)의 칼날이었다.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1925, 조선총독부 내에 설치되어 약 13년에 걸쳐 활동한 일본 제국주의의 핵심 역사기관이다. 그들은 <조선사(朝鮮史)> 35, <조선사료총서> 40, <조선사연구초> 등 방대한 분량의 기록을 남겼다. 이 작업은 단순한 학술 작업이 아니라, 일제의 식민 지배를 자연스럽고 합리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한 역사 조작이었다. 이를 주도한 인물은 일본의 역사학자 이마니시 류(今西龍)를 비롯하여 조선인 역사학자 이()와 신() 등이었다.

 

그들의 작업은 학문이라는 탈을 썼지만, 실상은 민족의 과거를 왜곡하여 현재를 포박하고, 미래의 저항을 꺾는 정치적 전략이었다. 단군조선은 원시 부족의 연맹으로 축소되었고, 단군(檀君)은 실존 인물이 아닌 신화(神話)’로 격하되었다. 고구려(高句麗)의 대륙 진출은 묵살 되었고, 부여(夫餘)와 대진(大震 발해)은 아예 한국사에서 제외되었다. 고려(高麗)와 조선(朝鮮)내정 간섭과 당쟁에 찌든 부패한 나라로 그려졌으며, 이런 퇴보를 근대화로 이끈 주체가 일본이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이것이 바로 식민사관(植民史觀)’의 골자다. 조선은 스스로 발전하지 못하는 나라였고, 일본의 지배는 불가피한 근대화의 수단이라는 논리로 야금야금 파고들었으며, 이는 곧 무력 침략을 정당화하고, 정신적 식민화를 고착화(固着化)하는 이념이었다.


일본은 단순히 땅만 점령하지 않았다. 정신·언어·문화·기억까지 점령해야 완전한 식민화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바로 민족의 기억그리고 그 역사적 의식에서 비롯되는 자긍심과 저항의식(抵抗意識)이었다. 기억은 정체성(正體性)을 만들고, 정체성은 반드시 저항을 낳는다. 그래서 그들은 기억을 지우려 했다. 기억을 지워야 정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국혼을 갉아 먹는 역사의 침략자들이다.

 

국사 교육은 황국신민(皇國臣民=國民)’을 기르는 도구로 전락했고, 한국어(韓國語)는 금지되었으며, 이름마저 창씨개명(創氏改名)’이라는 이름으로 뺏겼다. 조선사편수회는 그 최전선에 있었고, 한국인의 역사적 자의식을 마비시키는 역할을 담당했다. 자기 민족의 영광을 잊은 민족은 지배받아도 반발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일제의 물리적 지배는 1945년 광복과 함께 끝났다. 그러나 식민사관은 해방 후에도 견고하게 뿌리를 박고 있다. 그 중심에는 조선사편수회 출신의 조선인 학자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이도는 서울대학교 사학과 교수, 문교부 편수관과 문교부 장관으로 활동하였으며, 호는 고려대학교 교수로 해방 이후 국사 교과서 편찬을 주도했다. 그의 제자들은 한국 사학계 주류를 형성했고, 식민사관(植民史觀)은 다른 옷을 입고 정통 학설로 둔갑했다. 해방 후에도 우리는 아직도 보이지 않는 식민지신세가 되었다.


이로 인해 한국인은 해방 후에도 남이 써준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고대사의 뿌리는 잊어버렸고, 자주적 역사관은 이단(異端) 취급을 받았으며, 민족주의는 과격한 주장으로 몰렸다. 정치의 도구로 전락한 학문이었고, 진실이 아니라 권력이었다. 우리는 지금도 묻고 있다. 우리는 누구였는가.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을 잊었고, 어떻게 여기까지 밀려온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조선사편수회로 상징되는 기억의 장벽을 넘어서야 한다. 역사는 과거의 단순한 연대기가 아니다. 그것은 민족의 정체성을 세우고, 미래의 길을 가늠하게 해주는 거울이다. 그 거울이 조작 왜곡되어 있다면, 우리의 현재도 미래도 올바를 수 없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이야기가 심장을 찌른다.


길을 걷다 문득 바라본 길가의 애기똥풀이 노란빛으로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작고 연약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독성이 있어 함부로 다가오는 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킨다. 생명을 지키는 작고도 강한 방패다. 그 모습은 마치 우리의 역사처럼 느껴졌다. 작은 풀꽃의 저항처럼 지워지지 않는 민족의 혼은 오랜 세월 속에 왜곡되고 사실(史實)이 지워졌지만, 지워질수록 더 강하게 되살아나는 생명력은, 잿더미 속에서 다시 날아오르는 불사조(不死鳥)처럼 민족의 혼에 새겨지고 쌓여간다.

 

우리의 진실 된 역사는, 침묵 속에서도 살아 숨 쉬어 왔다. 그 속엔 강단(剛斷) 있는 단군조선의 통치 철학, 광활한 대륙을 지배했던 고구려 개마무사(鎧馬武士)의 진취성, 유목과 농경을 아우른 대진국(大震國, 발해)의 포용력, 고려(高麗)의 불교문화와 조선(朝鮮)의 유교적 질서가 어우러져 있다. 그 어떤 민족사보다도 풍부하고 넓으며 깊다. 그런 역사를,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남이 써준 교과서로만 배워왔다. 이제는 우리가 다시 써야 한다.


80년 만에 다시 역사의 문을 두드리며 우리는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총칼 앞에서 스러진 이름 없는 용사들을 떠올리며, 그들의 희생에 마음 깊이 감사한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지워진 우리의 이름, 우리의 기억, 우리의 진실 된 역사 앞에서도 마땅히 고개를 숙여야 한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 그들이 찢어버린 페이지들을, 우리가 외면했던 진실들을 이제는 우리 손으로 다시 써야 하고, 우리 입으로 다시 말해야 한다.

바른 역사는 국경을 지키는 것만큼 중요하다. 왜곡된 역사는 총칼보다 더 무섭다. 눈에 보이지 않는 침략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믿는다. 늦었더라도 진실은 반드시 돌아온다. 그 진실은 우리 아이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正體性)과 당당한 이름을 되찾아주어야 한다.

 

乙巳年(을사년) 2025815일 오늘

나는 태극기 앞에 서서 조용히 다짐한다.

잊지 않겠다.

지워진 역사도, 왜곡된 기억도.

이 작은 기록 하나가,

언젠가 우리의 기억을

다시 밝히는 불씨가 되기를 바란다.





▲대한민국 국기, 태극기 ⓒ한국공공정책신문

 















瓦也 정유순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중앙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한국공공정책신문 칼럼니스트

저서 <정유순의 세상걷기>, 

    <강 따라 물 따라>(신간) 등




 

 


작성 2025.08.13 10:44 수정 2025.08.13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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